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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직장인의 기록

by goyoura 2024. 1. 17.

못생긴 나의 삶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은 못생기고 지치기만 했습니다. 의지대로 사는 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많은 걸 바랄 수 없었던 조촐한 삶을 보내며 원해본 것이 있다면 '자유로움'이었습니다. 생각의 자유, 시간의 자유, 공간의 자유, 경제적 자유, 관계의 자유, 나답게 살아도 될 자유. 무엇하나 지키거나 얻어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사실은 얻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집에서 이런 직장을 다니고, 이런 돈으로 이런 사람들과 보내는 이런 일상에서 특별한 가치와 의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루했던 영혼은 재밌는 일이 생기면 깨워달라고 하곤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몇 년을 더 살아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매일 열심히 일하고 치열하게 보냈지만, 입에 풀칠하는 게 다였고 원하는 대로 쉴 수 없는 서글픔을 안고 습관대로 굳어진 삶을 보내왔습니다.

 

이렇게 표정 없는 인생조차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로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말과 행동을 고쳐야 했고,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장소에서 저의 시간을 팔았습니다. 이 삶을 사는 건 저였지만, 제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쓰였던 관심과 에너지에서 조금만이라도 자신을 위했다면 이렇게까지 낯설진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아쿠아리움에서 봤던 물범은 물범답게 헤엄치는 게 자연스러웠고, 동물원에서 봤던 원숭이는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게 자연스러웠고, 나는 내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데, 어떤 게 자연스러운 건지 잊고 산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가슴은 언제 뛰었던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길

어릴 땐 필수교육과정을 받으며 적당히 관심 있는 분야의 대학 전공을 수료하고, 관련 업무를 하며 직장에 다니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배웠습니다. 이 목표는 부모님이 정해줬습니다. 그리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여서 다른 경로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에게 바람직한 아이가 되어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고, 교육을 잘 마치고 회사에 입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년 동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고쳐가며 면접을 봤었는데, 돌이켜보면 신입일 때 취업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입사 후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체력이라는 자원을 쏟아부어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애썼습니다. 이런 노력은 무모했던 걸까요, 젊은 날의 객기였을까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업무를 불러왔고, 잦은 야근과 철야로 체력이 고갈되자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월급보다 더 비싼 병원비를 지불해야 했고, 한 번 꺾인 건강은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년 동안 휴식기를 가지며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실행했습니다. 몸에 대해 무지해도 되는 젊음은 그렇게 저물어갔고, 자신을 돌볼 줄 아는 노련한 나이테를 둘러갔습니다. 

 

회사에 오래 다닐수록 업무가 익숙해졌지만, 뭔가 맞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이직을 해봐도 제게 어울리는 풍경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에 가서 어떤 일을 해도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하면 할수록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일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가치와 나의 근본은 뭐였던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의심 없던 삶에 처음으로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직장인이라는 틀에서 나와 뭘 해도 되는 삶을 향해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나의 삶을 가져야 할 텐데.' 하고 말이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산다고 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삶이었고 변하지 않으면 미래도 같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다스려지는 것보단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시간을 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보단 모든 순간이 의미 있고 가치 있길 바랐습니다.

 

초점 맞추기

나는 누구고 어떤 삶을 살아야 좋을지와 같은 철학적인 생각들은 무겁습니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무게에 짓눌려 피하게 됩니다. 저 또한 생각이 무거워지자 기운이 가라앉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저런 책들과 영상을 봐도 헷갈리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잠시 멈춰 서서 저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생각이나 물음이 나올 때마다 바로 핸드폰 노트앱을 켜고 적었습니다. 시시콜콜한 불평불만이 떠올라도 적었습니다. 누군가의 어떤 점이 싫어도 적었습니다. 원하는 게 생기면 적었습니다. 생각을 적으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걸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답을 하게 됐습니다. 궁금한 걸 적어두면 시일이 걸려도 저만의 답이 나왔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저와 소통했습니다. 초반엔 한 두 문장 짧게 쓰다가 문장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길어진 만큼 솔직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몇 개월에 한 번씩 메모를 다시 읽어보며 남길 가치가 없는 건 삭제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불평했던 내용은 다시 보기 싫을 정도의 아픈 단어로 가득해 삭제했고, 그런 내용은 쓰지 않게 됐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게 됐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이리저리 흔들렸던 초점이 내게 맞춰지고 있었습니다.

 

기록의 시작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과 답변을 통해 되고 싶은 내 모습을 그려내고, 그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 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이 길이 아닌 것 같은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 느낌이 맞습니다. 머리보단 가슴이 알려주는 것이 더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기록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자기 탐구의 동굴에 들어선 분들께도 도움이 되는 기록이라면 기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